* 15화 네타 주의.
* DV + 오메가버스 소재 주의. 카라마츠가 오메가로 나오지만 수위는 없습니다.
* 이치카라 요소가 살짝 들어가 있습니다.
* 제목만큼이나 전체적으로 우울한 이야기.
“미안.”
연락도 없이 카라마츠가 불쑥 찾아와서 나에게 꺼낸 첫 마디가 사과라는 점에서, 복장 터지기 일보직전인 내가 화 이외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간신히 감정을 억누른 한숨을 가래침 내뱉듯 뱉어내는 것이 전부였다. 짜증 섞인 내 한숨을 듣고 카라마츠는 벌써 잔뜩 쫀 반응을 드러냈다. 이전부터 기세가 눌리면 본능적으로 남의 눈치를 살피기 급급한 카라마츠지만, 근래 몇 년 동안을 눈칫밥으로 간신히 연명해 살아가다보면 일상 속에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음에도 남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 기겁하기 일쑤가 되어버린다. 나는 재빨리 눈으로 카라마츠의 상태와 주변 물건들을 훑었다. 오른쪽 손에 감긴 붕대와 후줄근한 양복, 다 헤진 구두와 작고 낡은 트렁크. 그나마 맨몸으로 찾아오지 않은 것에 다행으로 여겨야 할지, 기어이 짐까지 싸들고 쳐들어온 것에 대해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어야 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해 나는 아파오는 골을 짚으며 일단 이성을 놓치지 않고자 애를 써야만 했다.
“일단 들어와. 날도 추운데 들어와서 이야기 하자고.”
간만에 만난 둘째 형을 계속 밖에 세워둘 수도 없고, 자세히 보니 서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부친 모습을 보여줘서 일단은 카라마츠에게 문을 열어줬다. 내 말을 들은 카라마츠는 문전박대 당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렇게나 기쁜지 바로 반색하는 얼굴로 ‘그, 그럼 실례하겠다. 마이 브라더.’ 같은 소리를 하며 트렁크를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자취방으로 들어오는 카라마츠의 모습을 뒤쫓으며 나는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언제부터 내 단칸방이 카라마츠의 대피소가 되어버린 걸까. 현관문을 닫고 걸쇠로 잠그기 전, 나는 잠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겨울의 하늘은 낮인데도 회색빛으로 컴컴했다. 카라마츠와 같은 푸른 하늘을 가려버리는 그 회색빛 구름이 마음에 들지 않아 나는 형수라는 호칭을 붙여주기도 아까운 그 여자의 낯짝을 대신해서 하늘을 노려본 뒤에야 현관문을 닫을 수 있었다.
그 녀석이 찾아온 날만큼 우울한 날씨였다.
[쵸로카라]비극의 연속
W. Arcadia.
우리들 중에서 가장 먼저 자립을 한 인물은 정말 의외로 카라마츠였다.
쌍둥이들 가운데 가장 일할 의욕이 없어 보이는 녀석이 자립을, 그것도 결혼으로 집을 나온다는 것에 마츠노 가는 한동안 카라마츠의 자립과 결혼을 최대 이슈로 삼아 한껏 떠들어댔었다. 손주를 보고 싶어 하는 부모님은 당연히 반대할 생각도 안하고 카라마츠의 결혼을 허락해줬고, 형제들도 일단은 카라마츠의 결혼을 축하해줬다. 그 와중에도 이치마츠 만큼은 구석에 앉아 분위기에 절대 휩쓸리지 않았지만, 우리들은 모른 척 해줬다. 그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어디까지나 이치마츠와 카라마츠 사이의 문제이기에.
그러나 결혼으로 들뜬 처음의 분위기는 카라마츠가 결혼을 약속한 여자를 집으로 데려오면서 금방 시들어버렸다. 그 당시에도 그녀는 빈말로라도 좋은 여자라 할 수 없었다. 어디서 저런 여자를 찾아왔나 싶을 만큼 겉도 속도 상당히 추한 여자였다. 추한 외모와 거친 말투, 사나운 행동과 손버릇에 나를 포함한 형제들 모두가 기겁을 했다. 첫 소개가 끝난 뒤, 나랑 토도마츠가 바로 카라마츠를 찾아가 지금이라도 다시 결혼을 재고해보라고 설득했다. 안쓰러운 소리를 하는 녀석이지만 본성은 착한 녀석이니 아주 좋은 여자는 아니더라도 저런 여자와 일평생을 함께 할 만큼의 녀석은 아니었다. 드물게 뜻이 통한 토도마츠와 함께 나는 카라마츠를 붙잡고 설득했다. 그러나 카라마츠는 여자의 편에 서서 그녀를 변호해줬다. 겉은 저래보여도 좋은 점도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다고,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해준 여자라며 카라마츠는 그녀와의 결혼을 무를 생각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그런 카라마츠의 완고한 태도에 당시의 나는 답답해서 주먹으로 가슴을 쾅쾅 두드리고 싶었다. 이런 심각한 와중에도 두 손 놓고 있는 오소마츠 형을 원망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형이 아무 말도 안했던 것도, 카라마츠가 그녀를 비호해준 것도, 결혼식 날짜가 잡혀진 것을 기점으로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괴롭히는 것 이상으로 거칠게 대한 것도, 전부 숨은 이유가 있었다.
카라마츠가 그녀에게 강제로 각인 당했고, 그로 인해 급하게 결혼까지 강행해야 했던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카라마츠의 결혼식이 있고 두 달이 지나서 그가 만신창이로 처음 마츠노 가로 피신했을 때였다.
손님이 오면 맨 처음에는 차를 내와야 하는데, 카라마츠가 왔을 때는 구급상자를 맨 처음 꺼내게 된다. 이것을 이제는 당연시 여기는 것도 이제는 진절머리가 났지만, 그렇다고 상처를 그대로 놔둘 수는 없었기에 나는 평소보다 무거워진 구급상자를 챙겨서 방 한가운데에 가시방석에 앉듯이 불편하게 앉아있는 카라마츠의 맞은편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옷 좀 벗어봐.”
“쵸로마츠. 나는 괜찮으니….”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벗어. 이제 와서 숨길 것도 없잖아.”
따끔한 내 말에 찔려버린 카라마츠는 상체를 주춤 뒤로 빼다가 끝내 항복하고는 순순히 입고 있던 겉옷과 와이셔츠를 벗어 내렸다. 겨울에 입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얇은 옷들을 벗겨내니 드러나는 것은 시퍼렇고 새빨간 멍과 날카로운 것으로 죽죽 베여진 불그스름한 상처들이었다. 쯧.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혀를 차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왔다. 나는 바로 구급상자를 열고 상처 하나하나에 약을 발라가고 그 위를 붕대로 감아줬다. 처음에는 쓰라림으로 인상을 쓰던 카라마츠는 조금 적응이 되자 착 가라앉은 얼굴로 얌전히 치료를 받았다. 그의 상처를 치료해주는 손이 내 손 같지가 않았다. 능숙한 손길. 그 능숙함이 싫었다.
내가 취직과 자취를 서두른 것은 순전히 카라마츠 때문이었다. 매 맞는 아내가 남편의 폭력성을 참다못해 친정을 피난처 삼아 도망쳐 들어오는 것처럼, 카라마츠도 두세 달에 한 번씩 집으로 찾아와 며칠 동안 머물다가 떠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집으로 올 때마다 카라마츠의 몰골은 말이 아녔다.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맞은 상처가 역력한 몸뚱이를 끌고 죄인처럼 집으로 기어들어오는 모습이 참 보기 싫었다. 집에 지낼 때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잔뜩 찌그러진 모습을 하고 있는 그가 싫었고, 그에게 언성을 높이기 싫어서 밖으로 나가버린 적도 있었다. 토도마츠랑 쥬시마츠도 카라마츠에게 가까이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이치마츠는 아예 없는 사람처럼 취급했다. 유일하게 카라마츠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아무것도 묻지 않은 사람은 오소마츠 형뿐이었다. 오소마츠 형이 있어서 카라마츠는 그래도 집으로 도망쳐 올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취직하기 한 달 전, 평소 이상으로 맞은 탓에 간신히 집까지 도착해서는 병원에 가자는 말도 한사코 거절하고는 그대로 사흘 내내 앓아누운 카라마츠의 몰골을 더는 무시하지 못하게 된 이치마츠가 폭발해서는 카라마츠의 멱살을 붙잡고 쫓아내는 사건이 터져버렸다. 그렇게 병신 같은 꼬락서니로 기어들어올 거면 다시는 오지 마! 이치마츠가 카라마츠를 내동댕이치며, 눈물을 흘리며 그에게 전한 최후통보였다.
어느 중소 회사에 붙고, 나는 자립을 선언했다. 그를 구해낼 수도, 함께 지낼 수 없다면 적어도 잃어버린 그가 마음 놓고 도망칠 수 있는 도피처가 되어주고 싶었다. 그런 내 심정을 헤아렸는지 오소마츠 형은 내 어깨를 두드리며 부탁한다는 말을 한 마디 남겼다. 그 자리에 이치마츠도 있었지만, 나는 애써 그 시선을 무시했다. 나는 내 자취집 주소를 카라마츠에게만 알려줬고, 그 후로 카라마츠는 내 집에 찾아오는 유일한 단골손님이 되었다.
치료를 마친 나는 구급상자를 다시 서랍장에 넣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카라마츠도 있으니 미리 만들어놓은 저녁의 양을 더 늘려야 했다. 카라마츠는 치료를 받은 덕분에 한결 편해진 자세로 앉았지만,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이 와중에도 그 여자 걱정을 하고 있는 건가. 이젠 웃기지도 않았다.
“저녁은 일단 카레로 해뒀는데 괜찮지?”
“아아. 항상 쵸로마츠한테 신세를 지는군. 형으로서 면목이 없다.”
“이젠 그 대사 지겹거든. 그래서 이번에는 얼마 정도 있을 건데.”
내 질문에 카라마츠는 잠시 흐려진 초점으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방을 유일하게 밝히고 있는 등은 정기적으로 닦아놓고 있어서 항상 깨끗함으로 밝았다. 그냥 보기에는 눈이 부실 텐데도 카라마츠는 형광등에서 눈을 떼어내지 못했다.
“오늘, 그 사람한테서 이혼 서류를 받았어.”
그 말에 저녁 손질을 하던 내 손이 절로 멈춰졌다.
드디어, 드디어 그 이야기가 나온 건가. 카라마츠에게는 비극적인 사건일지 몰라도 나에게는 마침내 기다리던 그 순간이 오는 간만의 희소식이었다. 언젠가 나오게 될 정해진 결말이었다. 반 년 전 길거리에서 우연히 커플 한 쌍을 발견한 것을 떠올렸다. 보기에도 구역질이 나는 여자와 함께 팔짱을 끼는 남자는, 그녀의 남편이 아니었다. 자기보다도 훨씬 어린 남자를 우악스럽게 끌고 다니는 여자를 보며 나는 불륜의 사실을 깨닫고 좌절감에 우는 카라마츠의 얼굴을 떠올렸고, 그 얼굴을 통해 기묘한 희열감을 느꼈다. 나는 앞으로 형을 덮칠 비극을 기뻐하고 있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어느 순간부터 기다렸는지 기억도 못할 만큼 기다렸음을 알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시간을 세어가며 참아왔었다. 드디어 인내심으로 기다린 끝에 그 여자에게서 카라마츠가 해방되는 그 순간이,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간에 카라마츠의 입장에서는 슬픈 소식이기에 나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고 뒤를 돌아봤다. 그러나 카라마츠의 표정은 슬픔의 그것이 아녔다. 배신감과 더불어,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황망함이 카라마츠의 얼굴을 뒤덮었다. 앞날이 전혀 없는 사람의 좌절과 허망함과도 같아서 나는 갑자기 덜컥 겁이 났다. 내가 모르는 비극 속에, 진짜 비극이 숨겨져 있는 것 같았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나는 그것을 애써 부정한 뒤에 말문을 떼었다.
“자, 잘됐잖아. 그런 여자, 진즉에 헤어졌어야 했다고. 하, 이제 와서 그렇게 괴롭히니까 지금 와서야 양심에 가책이 온 거겠지.”
“쵸로마츠.”
“사실 언제 말할까 줄곧 망설였는데, 그 여자 바람까지 피우고 있었다고? 그것도 자기보다도 훨씬 어린 남자랑 같이 말이야. 그런 짓까지 하고서 너랑 한 지붕 아래에 같이 산다는 건 인간이 할 짓이 못 되지.”
“쵸로마츠.”
“그깟 각인이라면 신경 쓰지 마. 물론 힘들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계속 같이 지내는 것보다는….”
“쵸로마츠!!!”
무언가를 쥐어짜내 고름처럼 줄줄 흘러나온 외침이 등을 흔들었다. 삐걱이는 소리를 내며 진자 운동을 반복하는 등이 시야를 어지럽혔다. 나와 카라마츠 사이를 갈라놓는 것 같았다. 카라마츠는, 울고 있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고, 자신이 사랑하고 있다고 믿는 여자에게서 배신당해 버림받았다고 여기기에는, 아직 알 수 없는 비참함이 끈적끈적하게 녹아들어 있었다. 뭐야, 왜 그렇게 울고 있는 거야. 그렇게까지 울 필요는 없잖아, 카라마츠 형. 우리가, 내가 형이 돌아오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카라마츠는 다다미에 엎드려 눈물을 쏟아냈다. 항상 집으로 도망쳐 와도, 믿었던 집에서 쫓겨났어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은 카라마츠 형이, 내 방 한 가운데에서 이를 악 물고 참았던 오열을 전부 쏟아내기 시작했다.
꺽꺽거리는 울음소리 사이로, 카라마츠가 띄엄띄엄 말했다.
“…끄윽, 흑… 2, 2개월… 2개월이래…. 2개월이라고….”
“2개월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으, 으으, 흑, 크흡, 흐, 흐으으….”
“뭐야,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제대로 말을 하라고, 카라마츠 형!!”
참지 못하고 그에게 달려가 어깨를 붙잡고 흔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가 입을 다물어주기를 바랐다. 더는 말하지 마. 내가 이 기쁨을 잃게 하지 말아줘. 어떻게, 어떻게 되찾았는데. 얼마나 기다려서 되돌려 받았는데. 이제 아프지 말고 함께 지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카라마츠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여자 이상으로 잔인한 말을 나에게 남겼다.
“나, 애 가졌어.”
그토록 고대했던 이야기는 우중충한 하늘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최악의 비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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