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가라님 리퀘 소설. 마피아 AU
그 날, 너는 거미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손을 나에게 쭉 내밀어 이렇게 말했다.
“나와 함께 하는 게 어때?”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내미는 너의 그 모습이 얄미우면서도 야속했다. 나와 함께 할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그 모습이, 부탁하는 어조로 말했지만 그 안에는 내가 그 손을 잡는 것을 기정사실로 세우고 있는 뻔뻔함이, 짙게 그려진 호선에서 느껴지는 자만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존재를 자신의 것으로 단정 짓고 멋대로 자신의 아래로 놔두는 너의 그 모습이 싫어, 오기로라도 그 손을 세차게 뿌리쳐 내렸다. 모든 것이 네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나라도 그 녀석의 머리에 박아 넣고 싶었다. 이 녀석의 자만심과 완벽함의 유일한 오점으로 남고 싶었다. 그 녀석의 모든 예상 안에 나는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줌으로서 그 녀석이 뜻대로 되지 않는 답답함과 손에 들어오지 않는 초조함에 감정을 일그러뜨려 그것을 표정으로 드러내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그 표정을 마주하고 나면 알 수 없는 불쾌함에 나까지 표정이 구겨버릴 것 같았다.
본래에는 무엇이었는지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혼합되어 버린 감정을 실어 그 녀석의 손을 쳐내며 나는 녀석의 제안에 답했다.
“내가 너와 함께하는 날은 평생 오지 않을 것이다.”
너와 함께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녀석에게 보여주는 내 자존심이었다.
자존심
W. 아르카디
“보스. 괜찮으신가요?”
자신을 부르는 나긋한 목소리에 크로커다일은 잠시 감았던 눈을 뜨고 흐릿한 시야의 초점을 원래대로 맞추어서 자신의 앞에서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상태를 살펴보는 직속 비서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미간을 누르면서 손을 들어 올려 괜찮다는 표시를 해주었다. 평소에는 이지적인 이미지로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신비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그녀가 대놓고 걱정하는 기색을 드러내는 것을 보면 어지간히도 자신의 상태가 안 좋게 보였구나 하는 생각이 크로커다일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미간을 짓누르며 피곤을 조금이나마 떨쳐낸 후, 크로커다일은 잠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책상 위에 올려놓은 은색의 시가 케이스를 열어 그 안에 배치되어 있는 시가들 중 하나를 집어 들어 끝을 잘라내고는 불을 붙여 한 모금 빨아마셨다. 시가 특유의 매캐한 맛이 입 안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크로커다일은 의자에 몸을 기대었다. 그 모습을 쭉 지켜보던 여비서는 그동안 크로커다일이 처리한 서류들을 살펴보며 대화를 시도했다.
“요즘 많이 무리하시는 것 같은데 쉬엄쉬엄 하시는 편이 좋아요. 왠만한 일은 밑에 있는 사람들에게 돌리도록 하고요.”
“흥. 밑에 있는 녀석들의 일처리가 영 신통치 않으니까 그렇지. 교육을 어떻게 시키는 건지.”
“주의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오후 일정은 어떻게 되지? 니코 로빈.”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크로커다일의 질문에 로빈은 기다렸다는 듯이 손에 쥐고 있던 서류들 중에서 하나를 집어 들고는 오후 일정에 대해 똑 부러진 목소리와 발음으로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크로커다일이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머릿속에서 일정들을 정리하는 사이 어느새 그가 물고 있는 시가는 절반 이상 타들어가고 뭉툭하게 남아버리게 되었다. 일정을 전부 설명하는 것으로 마무리를 한 니코 로빈은 마지막으로 깜빡 한 게 있다면서 따로 챙겨둔 다른 서류철에 꽂아둔 편지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놓아 크로커다일에게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조금 전에 보스 앞으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편지?”
뜻밖의 편지에 크로커다일은 그녀에게서 편지를 전해 받고는 앞뒤로 편지 봉투를 살펴보다가 입구를 틀어막고 있는 붉은 촛농과 그 위에 찍힌 문장(紋章)에 불쾌하다는 듯이 혀를 차고는 화풀이 하듯이 시가를 재떨이에 거칠게 비벼댔다. 그의 반응에 로빈은 새삼스럽기는커녕 오히려 익숙하다는 듯이 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보스를 지켜보았다. 그녀 또한 문장을 보자마자 편지가 어디에서 오게 되었는지 알게 되었으니까. 붉은 촛농에 찍힌 표식은 사선이 그어져 있는 스마일이었다. 크로커다일은 잠시 편지를 읽지도 않고 그냥 처리해버릴까 하는 표정으로 갈등하다가 속는 셈치고 내용물을 확인해보기로 결정하고는 봉투를 뜯어 편지지를 꺼내 펼쳐 읽어보았다. 편지를 읽으면서 시선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의 미간은 조금 전에 기껏 펴놓은 것이 무색할 정도로 다시 험하게 구겨지고 말았고, 결국 마지막에 편지를 다 읽은 크로커다일의 얼굴에는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편지를 두 번 찢어서 책상 위에 던져버리고는 노기가 띈 목소리로 로빈에게 명령했다.
“당장 그 편지 불태워버리도록. 읽을 가치도 없는 편지였군.”
“이번이 벌써 네 번째였죠? 꽤나 열정이 넘치는 러브레터네요.”
“말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다, 니코 로빈.”
찢겨진 편지를 주우며 장난스럽게 말하는 로빈의 말에 단번에 눈을 세모로 뜨며 살벌하게 경고를 하는 크로커다일의 말에도 로빈은 여전히 특유의 신비하면서 여유로운 미소를 잃지 않으며 편지를 마저 주워 챙겨두었다. 찢겨진 편지를 맞춰보며 내용을 살펴보던 로빈은 잠시 그것들을 곰곰이 살펴보다가 새로운 시가를 집어 들어 불을 붙이는 크로커다일에게 말했다.
“하지만 계속 무시할 수는 없어요. 최근 들어서 돈키호테 패밀리와의 충돌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고, 본격적으로 대립에 들어가 항쟁에 접어들게 되면 저희들 사업에도 큰 타격이 올 겁니다. 서로가 온건하게 나오고 있는 지금 시점에서 협상을 진행해서 타협점을 찾는 편이 나중에 일어날 불상사를 막을 수 있어요. 요즘 같은 시대에 무턱대로 총을 겨누며 무력적으로 제압하면 서로가 손해니까 말이죠.”
냉정하게 현 사태에 대해 분석하며 타협점을 요구하는 니코 로빈에 말에 크로커다일은 떨떠름하고 불쾌한 기분이 들면서도 그녀의 말은 충분히 합리적이었기에 잠시나마 자존심을 접고 편지들이 연이어 오게 되는 나날들 중에서 처음으로 그녀처럼 머리를 차갑게 식혀서 현 상황에 대해 정리해 나아갔다.
최근 들어 지속적으로 크로커다일에게 편지를 보내 마피아 조직 간의 동맹 내지 합병을 요구하고 있는 인물이 있었으니, 그 인물은 바로 돈키호테 패밀리의 보스인 돈키호테 도플라밍고였다. 어렸을 적부터 마피아 세계의 밑바닥에서부터 기어올라 현재 뒷 세계를 양분하여 그 중 절반 정도의 세력을 차지하고 있는 강대한 조직을 만들어낸 인물로서 비록 방향은 그리 건전치 못하지만 자수성가라는 말을 그대로 실현해낸 자였다. 마약 밀거래와 장기 매매를 주요 수입원으로 하여 삽시간에 거액을 벌어낸 그의 장사수완은 크로커다일조차 혀를 차면서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부족한 것 하나 없이 크로커다일이 이끄는 바로크 패밀리와 함께 마피아 세계에서 투톱으로 자리 잡고 있는 그가 최근 들어 크로커다일에게 동맹, 더 나아가 두 조직 간의 합병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전조 없이 갑자기 불쑥 꺼낸 제안인지라 크로커다일은 또다시 시작된 그의 장난인가 싶어 별 생각 없이 가볍게 무시해버렸지만 유감스럽게도 도플라밍고가 그에게 제안을 한 것은 농이 아닌 진심이었다. 그 후로 만남을 요청하거나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식으로 요청할뿐더러 때로는 고의적으로 무력 충돌을 벌여서 경고성을 담아 위협을 하기도 했다. 계속해서 이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전면전으로 갈 수 있다는 위협. 이쯤 되면 크로커다일로서는 당장에 편지가 아니라 본인을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한 금빛 쇠고리로 두 동강을 내고 싶을 정도로 인내심에 빨간불이 들어올 지경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그를 보좌한 로빈의 눈썰미를 봤을 때는 이미 제안을 받은 처음부터 빨간불이 들어온 것으로 보였지만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불이 들어오기만 할 뿐이었다. 전면전이 벌어지면 자연스레 장기전으로 이어질 테고, 그렇다면 상대는 물론 본인들에게도 타격이 갈 것이 당연지사였다.
사실 제안이야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도플라밍고가 제의한 조건들과 앞으로의 혜택들을 검토해보면 오히려 크로커다일 쪽에 유리한 부분이 많았으며 로빈이 봐도 이정도로 양보하면 조직 내분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두 개의 거대 조직이 하나로 합해지면 더 이상 두려울 것도 없었으며 자신들에게 총을 겨눌 조직들도 더 이상 없을 거다. 합병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맹 정도라면 괜찮은 정도였다. 애초에 돈키호테 패밀리는 마약과 장기 매매가 주요 수입원이었고 바로크 패밀리는 암살과 군수무기 밀매가 주요 수입원이었기에 서로 겹치는 부분이 없어서 하나로 합쳐진다면 서로의 시장이 넓어지게 된다. 이렇게 실리적으로 따져보면 충분히 긍정적으로 볼 제안이었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바로크 패밀리의 보스인 Sir. 크로커다일이 돈키호테 도플라밍고와 손을 잡는 일이 죽는 것을 제외하고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기에 로빈은 함부로 도플라밍고의 제안에 호의를 표하거나 긍정적인 말조차 할 수가 없었다. 아직 그녀로서는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젊은 나이에 죽기에는 너무 이른 일이었다. 후우. 은근히 고집이 센 자신의 상사를 최대한 좋은 쪽으로 유도하고자 로빈은 조심스럽게 크로커다일에게 최선책을 내밀어주었다.
“일단 D. 도플라밍고 님과 한 번 만나보시는 게 어떠시겠습니까? 계속 편지를 주고받는 것도 시간 낭비이니 거절을 하든지 승낙을 하든지, 일단 정식으로 얼굴을 마주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편지로 지루하게 줄다리기를 하는 것은 서로에게 시간낭비였다. 차라리 정식으로 만나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눔으로서 확실하게 이 건에 대해 매듭을 짓는 편이 좋았다. 로빈이 무슨 의미로 꺼낸 말인지 알기에 크로커다일은 잠시 곰곰이 그녀의 말을 생각해보다가 잠시 후, 결정을 내린 것인지 승낙의 말 대신 그녀에게 명령을 내렸다.
“스케줄 체크해서 되도록 빠른 시일 내로 일정을 잡아놓도록.”
“알겠습니다. Sir.”
순순히 고개를 숙여 대답하는 로빈의 말을 듣고서야 크로커다일은 코트를 챙겨들어 어깨에 걸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오후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먼저 앞서서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로빈은 그런 크로커다일의 뒷모습을 잠시 웃음기가 담긴 눈빛으로 지켜보다가 자신도 그를 뒤따라 나아갔다. 자신이 보낸 편지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지 충분히 알면서도 끈질기게 보내는 상대나, 그것을 목석처럼 찢고 불태워버리는 자신의 상사나, 어느 쪽이든 어린아이들의 신경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갑자기 말도 없이 밖에 나가면 어쩌자는 거야!! 한참 찾았잖아!!”
음산한 저택 안을 요란스럽게 흔드는 것은 어린 소녀의 투정 섞인 외침이었다. 분홍빛 머리카락에 고스로리풍의 검은 드레스와 큼직한 인형을 팔에 안고 계단 난간에 매달려 버럭 소리를 질렀고, 소녀가 소리를 지르게 만든 상대는 이제 막 저택 안으로 들어온 세 자루의 칼을 허리품에 찬 녹빛 머리카락의 청년이었다. 저택에 들어오자마자 듣게 된 소녀의 외침을 기습적으로 받아낼 수밖에 없던 상대는 듣기 귀찮다는 표정으로 귀를 잠시 막았다가 투덜거리며 소녀의 말에 반박했다.
“밖에 나간 것 가지고 귀 따갑게 소리 지르지 말라고. 딱히 나가든 말든 내 맘이잖아.”
“이잇, 시끄러! 나한테 말도 안하고 나간 네 잘못이잖아!! 말도 없이 어딜 갔는데?”
“잠깐 요 근처에 술 마시고 왔다. 일일이 물어보지 말라고.”
“칫!”
계단을 오르면서 가벼운 말다툼을 나누는 남녀의 대화는 싸움 같아 보여도 왠지 이것에 그들의 일상 중 일부분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남자의 태도가 상당히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소녀는 볼을 크게 부풀리며 보란 듯이 고개를 옆으로 홱 돌려 품에 있는 인형을 안은 팔에 힘을 꽉 주었다. 누가 봐도 화가 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녀의 태도에 남자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벅벅 긁으며 여기서 무시하고 들어가면 나중에 더 씩씩거리며 방까지 쫓아올 것을 알기에 어떻게 해야 되나 싶었다.
인기척도, 소리도 없는 불청객이 들이닥친 것은 그 때였다.
“훗훗훗. 여전하군. 이렇게 보면 매의 눈이 너희 둘을 데리고 있는지도 어쩐지 알 것 같단 말이야.”
두 사람을 사이에 둔 창문을 통해 들어온 그 남자는 창틀에 앉아 처음부터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것처럼 여유로운 미소와 자세를 취하며 자연스럽게 대화에 끼어들었다. 펄럭이는 분홍색 털 코트가 마치 새의 날개처럼 바람에 펄럭여 마치 남자를 한 마리의 유려한 새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뒤늦게 서야 이 저택에 허락도 없이 들어온 불청객의 등장에 두 사람 다 흠칫 뒤로 물러났고, 남자는 반사적으로 허리에 찬 세 자루의 칼들 중 하나에 손을 얹어 바로 발도 준비를 했다. 누구든지 마주하면 곧바로 꼬리를 내리고 도망칠 정도로 매서운 짐승의 살기를 품은 남자의 두 눈에도 불청객은 두려움 하나 없이 태연자약한 태도로 여유를 보여주었다.
“그 눈빛 하나만큼은 점점 그 녀석을 닮아가는군, 롤로노아 조로. 훗훗훗. 살기는 그쯤하고 거두는 편이 좋을 텐데?”
“당신이 여기는 어쩐 일이지?”
“친구 만나러 온 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
“손님이라면 손님답게 문으로 들어와. 좀도둑처럼 창문으로 들어오지 말고.”
“마, 맞아! 함부로 창문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깜짝 놀랐잖아!!”
불청객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약간 기세가 눌린 듯 잠시 주춤거렸지만 그것도 잠시, 바락바락 애를 쓰며 자기 할 말은 끝까지 다 하는 여자의 겁 없는 배짱에 조로는 어쩐지 제가 맥이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긴,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멋대로 빈 집인 줄 알고 들어가 집주인이 돌아왔는데도 당당하게 안방을 차지한 여자의 무용담을 생각해 볼 때 이런 기세는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 저택의 주인이 누군지 알게 되면 그 기세는 더욱 대단하게 보여 진다.
뚜걱, 뚜걱. 이대로 이어질 것만 같았던 세 사람의 대치를 끝낸 것은 익숙한 구둣발 소리였다. 복도를 묵직하게 울리는 발걸음에 세 사람 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에서 가장 먼저 서서히 나타나는 것은 황금빛으로 형형히 빛나는 두 개의 매의 눈동자였다.
“무슨 소란들이지?”
집주인의 등장에 두 사람은 입을 다물어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런 둘을 대신하듯이 대답한 인물은 키득키득 웃으며 집주인에게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인사하는 불청객이었다. 집주인은 불청객의 인사에 미간을 꿈틀거리는 것으로 반응했다. 미간의 움직임을 볼 때 집주인에게 있어서도 썩 달갑지 않은 손님임이 확실했다.
“여, 오랜만이군.”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와서 왠 소란이지, 도플라밍고.”
“훗훗훗. 소란이라면 내가 아니라 네 사나운 제자와 고스로리 비서 쪽이 먼저 피웠다고.”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어쨌든 손님이 왔는데 차라도 내와야지 않겠어?”
손님은 왕이라는 말을 그대로 보여줄 생각인지 거만한 태도로 창문에서 내려와 제대로 복도 위에 선 도플라밍고의 모습에 집주인은 잠시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묵묵히 서 있다가 이내 몸을 돌려 자신이 방금 전에 걸어온 곳을 다시 되짚어 올라갔다. 말없이 앞서가는 남자의 등은 조용히 따라오라는 무언의 압박이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어이, 계집. 가서 차를 내오도록.”
“글쎄, 내 이름은 페로나라니까! 몇 번을 가르쳐줘도 계집이라고 부르고!! 그리고 멋대로 명령하지 마! 바ㅡ보ㅡ!!”
형식적이기는 하나 자신은 그의 비서이고, 상대는 자신의 상사임에도 불구하고 혀까지 쭉 내밀어 멀어지는 남자의 뒤통수를 향해 있는 대로 투정을 부린 페로나는 그대로 크게 콧방귀를 뀌고는 반대 방향으로 몸을 돌려 어디론가 가버리고 말았다. 조로는 씩씩거리며 가는 그녀가 가는 방향이 부엌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는 부탁 받은 대로 차를 끓이러 가는 것이라 짐작했다. 불평을 늘어놓고 버릇없이 투정을 부려도 결국에는 부탁을 들어주는 그녀의 성격이 아직은 익숙지 않았지만 조금씩 적응되어 갔다. 조로는 자신도 스승을 따라가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어차피 자신이 없어도 충분히 제 몸 하나 가볍게 지킬 수 있는 남자기에 자신은 그냥 방으로 돌아가 잠이나 자기로 결정하고는 제 방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시 후, 손님을 자신의 방까지 데려온 남자는 척 보기에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붉은 벨벳 소파에 털썩 앉아서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연락도 없이 여기에는 무슨 일이지, 도플라밍고.”
“훗훗훗. 실은 네 녀석에게 부탁이 있어서 말이다, 미호크. 요즘 나하고 크로커다일 사이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는 너도 들어서 잘 알고 있겠지?”
미호크가 앉은 소파의 맞은편에 위치한 의자에 적당히 자리를 잡고 앉은 도플라밍고가 그렇게 말하자 미호크는 그가 어째서 자신을 찾아왔는지 짐작이 갔다. 그의 말대로 최근 들어서 돈키호테 패밀리와 바르코 패밀리 간의 관계가 자주 미호크의 귀에 들어왔다. 흥미로운 정모가 아니면 굳이 나서서 정보를 수집하거나 움직이지 않는 미호크의 귀에도 들어올 정도라면 두 조직 간의 관계가 현재 마피아계에서 얼마나 뜨거운 감자인지 짐작이 갔다. 그러나 미호크의 입장에서 이러한 이야기는 딱히 신경을 쓰고 싶지 않다는, 긴 세월동안 유지되고 있는 질긴 인연이 무안해질 정도로 인색한 반응만 나올 뿐이었다. 귀찮은 일은 질색이고, 두 사람 사이에 끼이는 것은 더더욱 사양이었다.
“거절한다. 당장 돌아가.”
그래서 미호크의 입에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거절의 말이 쉽게 나올 수 있었다.
“아직 내가 뭘 부탁할지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고. 매정한 건 여전한 녀석이군.”
“너하고 크로커다일 사이에 끼어봤자 좋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네 녀석들 일에 왜 내가 말려들어야 하는 거지?”
“뭐, 귀찮은 일은 시키지 않을 생각이다. 그냥 중재자로서 자리를 지켜주기만 하면 그걸로 되는 거라고. 그리고 네가 내 제안을 거절한다고 해도 크로커다일 쪽에서도 나랑 비슷한 제안을 해 올 테니 여기서 받아들이는 게 좋다고?”
“크로커다일이 너와 같은 부탁을 할지는 어떻게 알고 그런 소리를 하는 거지?”
“네 비서와 크로커다일의 비서가 통화하는 걸 살짝 엿들었거든.”
“돈키호테 패밀리의 보스라는 녀석이 남의 통화를 몰래 듣는 일이나 하는 건가.”
“우연히 듣게 된 것 가지고 너무 깐깐하게 나오지 말라고.”
일말의 죄책감과 미안함 없이 어깨를 한번 으쓱거리는 것으로 쉽게 넘겨버리는 도플라밍고의 태도에 미호크도 더 이상 말씨름을 할 기분이 나지 않아 턱을 괴고 페로나가 차를 가져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도플라밍고가 크로커다일이 수많은 사람들 중 ‘매의 눈’이라 불리며 개인으로 취급했을 때 단연 최강의 실력을 가지고 있는 쥬라큘 미호크에게 부탁하는 이유는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두 사람에게 있어서 미호크는 서로를 제외시키고 나면 가장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기 때문이다. 친구라고 부르기에는 그렇게 살가운 표현을 쓸 정도로 친밀하지는 못했다. 동업자라는 표현이라면 어느 정도 어울릴지도 몰랐다. 어렸을 적부터 이 험난한 세계에 뛰어들어 우연찮게 몇 번 같은 일을 함께 해나가다 보니 자연스레 서로의 얼굴을 익히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셋이서 붙어 다니는 경우가 많아졌다. 미호크는 당시의 일을 떠올리라면 분명히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시절의 일을 회상해보면 도플라밍고의 태도가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너도 어지간히 끈질긴 녀석이로군. 크로커다일 녀석은 너랑 함께 하는 걸 싫어한다는 것 정도는 예전에 알아채지 않았나?”
“훗훗훗. 그야 물론이지.”
“그 녀석이 싫어하는 일만 골라서 하니까 녀석도 널 싫어하는 거다. 처음부터 거절 할 걸 알면서도 동맹이니 합병이니 하는 소리를 지껄인 건가?”
“뭐, 쉽게 넘어올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지.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생각은 없다고?”
미호크로서는 여유롭게 웃어 보이는 도플라밍고의 모습은 몇 번이고 봐왔던 것이었지만 지금만큼은 묘하게 보인다고 느껴졌다.
무슨 이유인지 도플라밍고는 계속해서 크로커다일에게 함께 하지 않겠냐고 몇 번이고 제의했다. 너와 함께하면 분명 지금보다도 더 강해질 수 있다면서 온갖 달콤한 말로 구슬리며 끈질기게 설득하였지만 크로커다일의 대답은 그의 설득만큼이나 변함없는 거절을 유지하였다. 차가운 눈빛과 매정한 태도로 단 한 조각의 죄책감도, 미련도 없이 크로커다일은 도플라밍고의 손을 쳐내었고, 도플라밍고는 그렇게 쳐내어진 손을 다시 한 번 내밀게 된다. 지리멸렬한 반복을 지켜보면서 처음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미호크조차도 슬슬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그래서 몇 년 전, 미호크는 우연히 크로커다일과 단 둘이 가지게 된 자리에서 기회삼아 물어보았다. 어째서 그 녀석의 제안을 거절 하는 것이냐고. 크로커다일은 미호크의 질문에 잠시의 정적을 가지더니 대답하였다. 그 녀석의 뜻대로 되는 것이 싫다. 언젠가 내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녀석의 뜻대로 순순히 흘러간다고 생각하니 미치도록 화가 나고 싫어서 거절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재미있는 꼭두각시 인형으로 취급하고, 그 취급대로 사람들을 실에 묶어 조종하는 도플라밍고에게 있어서 크로커다일은 유일하게 줄에 묶이지 않은 인형이었다. 그러니 도플라밍고는 그 인형마저도 자신의 실에 얽매이게 만들어서 움직이게 하고 싶은 것이라고, 크로커다일은 답했다.
그러나 미호크는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이렇게 거절하는 것 자체가 도플라밍고의 뜻대로 흘러가는 것이며 그 녀석이라면 이런 상황 자체를 즐기며 자신의 유희거리로 삼을 만한 녀석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크로커다일이 간파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도플라밍고의 제안에 대한 거절은 크로커다일의 자존심이었다. 이 상황 자체가 녀석으로 인해 돌아간다고 해도 이제 와서 받아들이기에는 지금까지 쌓아놓은 자존심이 허사가 되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미호크는 크로커다일이 어째서 도플라밍고를 싫어하는지 절실히 이해가 될 정도였다.
“네가 그런 식으로 나오니까 크로커다일이 네 녀석을 싫어하는 거다.”
“훗훗훗. 알고 있다고.”
“알고 있으면 적당히 하고 그만 둬. 네 녀석이 그만두면 되는 일이다. 네 녀석의 유희에 나까지 휘말리고 싶지 않다고.”
“훗훗훗. 단순히 재미로 그러는 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한 후에 지은 도플라밍고의 미소는, 이전과 달리 씁쓸함이 옅게 섞여있었다.
“그 녀석하고 함께 하고 싶다는 건, 진심이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악질이라는 거다.
미호크는 머릿속에서 바로 떠올린 말을 내뱉을 뻔 했지만, 자신이 굳이 그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하아. 그래서 미호크는 대답 대신에 귀찮다는 의미로 한숨을 던져놓듯이 뱉어내었다. 이렇게 되면 자신은 한동안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어울려 놀아주는 수밖에 없었다.
똑똑. 페로나가 홍차를 가져왔는지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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