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니 루피X텐구 로우. 약간 키드로우 포함.
“너무 그 녀석과 가까이 지내지 마라.”
때 아닌 단짝친구이자 호위무사의 충고에 루피는 지금 막 게다를 신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고개를 돌려 다다미에 앉아있는 조로에게 고개를 갸웃거려 말없이 이유를 물어보았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리냐는 루피의 의도가 담긴 고갯짓에 조로를 잠시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 자라왔고 지금은 차기 수장이 되어 여러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친구를 위해 자처하여 호위 역에 나선 조로는 친구라는 입장에서나 호위무사라는 입장에서나 똑같이 철없는 벗이자 주군이 한 결 같이 걱정될 따름이었다.
“그 텐구에게 자주 찾아가지 말라는 거다. 주위에 보기 안 좋다.”
“로우를 만나러 가는 게 뭐가 어때서?”
“그건 네 생각이고, 표면적으로 우리 오니들과 텐구들은 서로 세력다툼을 하고 있는 적대 관계다. 게다가 로우라는 그 텐구는 텐구들 사이에서도 경외 시 되어있는 녀석이야.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고, 강한데다가 위험한 분위기를 품고 있는데 그런 안 좋은 녀석을 차기 수장이 허다하고 만나러 간다면 주변에서 어떻게 생각하겠냐. 가뜩이나 어린 나이에 차기 수장 자리에 올랐다고 평판이 극과 극인데 말이야.”
“로우는 좋은 녀석이야! 그리고 로우는 예전에 나를…!!”
“예전의 일에 대해서는 나도 알고 있어. 네가 맨날 붙잡고 이야기 하는데 모를 리가 있냐. 그 일에 대해서는 나도 고맙게 생각하고, 사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나쁜 감정도 없다. 하지만 입장이라는 게 있는 거야. 네가 로우를 만나러 가는 건 너에게도 안 좋고, 그 녀석에게도 안 좋아. 가뜩이나 무리 내에서 고립되고 있는 녀석인데 오니들의 차기 수장과 어울려 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예 무리에서 쫓겨날지도 몰라.”
“하, 하지만….”
“루피. 넌 이제 너 혼자만 생각해서는 안 돼. 남들 위에 선다는 것은 자신의 입장보다도 주변의 시선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가 언제나 허리춤에 차고 다니는 세 자루의 검의 칼날만큼이나 날카로운 조로의 일침에 루피는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차마 그의 말에 반박하지 못하고 그대로 입을 꾹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丹心
W. 아르카디
“오늘따라 꽤 조용하군.”
“에?”
갑자기 나무 위에서 말을 걸어오는 로우에 루피는 이때까지 선잠을 자다가 퍼뜩 깨어난 것처럼 지금껏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좌우로 두리번거리다가 소리가 들린 곳이 위라는 사실을 깨닫고 고개를 들어 나무 가지 위에 앉아있는 로우를 보았다. 푸른 나뭇잎들 아래서 굵은 가지에 걸터 앉아있는 로우는 루피를 평소와 같은 무표정으로 내려다보았지만 눈빛에서는 전과 다른 루피의 시무룩한 태도에 의아함을 비추고 있었다. 루피는 잠시 고개를 위로 그대로 고정시켜 로우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검은색과 노란색을 기조로 한 텐구들만이 입는 전통 복장과 손에 항상 들고 다니는 제 키보다도 더 긴 장검, 그리고 무엇보다도 로우의 모습을 단연 돋보이게 하는 것은 새까만 까마귀 날개였다. 촉촉이 젖어 윤기가 흐르는 날개는 나뭇잎들 사이로 쏟아져 내려오는 햇빛을 받아 그 빛을 더하였다. 흑단과도 같은 매끄러움을 연상케 하는 검은 날개는 다른 텐구들의 날개에서는 찾을 수 없는 미가 있었기에 루피는 로우의 날개를 햇살 아래서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상기된 얼굴로 멍하니 자신을 보는 루피의 모습에 로우는 혹시 어딘가 아픈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신경이 쓰여 눈썹을 모으며 재차 질문했다.
“혹시 어디 몸이 안 좋은 것이냐.”
“아, 아냐! 괜찮아. 이시싯, 걱정해줘서 고마워. 그냥, 로우 날개는 참 예쁘구나 하고 생각했어.”
“또 그 소리 인거냐.”
거의 매일같이 이어지는 자신의 날개에 대한 루피의 칭찬에 로우는 이제는 질렸다는 듯이 받아치면서도 칭찬을 받는 것에 익숙지 않은 덕분에 감정을 완전히 숨기지 못하고 날개를 어색하게 펄럭이고 말았다. 그런 로우의 습관을 잘 아는 루피는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미소를 지어보이며 로우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을 정도로 루피는 그에게 흠뻑 빠져있었다.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잊지 않았으며, 다시 만나게 된 그 날부터 다시금 그를 사랑하게 되면서 매일같이 찾아가며 그에 대한 연심을 남모르게 키워가고 있었다. 그러나 행복한 기분도 잠시, 루피의 머릿속으로 조로의 말이 다시금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루피는 미소를 거두고 그와는 어울리지 않은 우울한 표정을 지어버리고 말았다.
조로의 말을 루피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텐구들과 오니들 사이의 대립은 루피가 태어나기 전부터 있었던 오래된 갈등이며 그것은 제아무리 루피하고 해도 쉽게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루피 또한 그들의 세력다툼에 휘말려 죽을 뻔한 적이 있었고, 그 사건을 기점으로 두 종족 간의 사이는 더욱 더 악화일로로 걷게 되었다. 조로가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가뜩이나 어린 나이에, 단순히 현 수장의 손자라는 이유만으로 차기 수장에 올라선 것이 아니냐는 낙하산 의혹이 기름종이에 떨어진 물이 번져나가는 것처럼 스멀스멀 퍼져나가고 있는데 텐구들 사이에서 평판이 안 좋은 자와 함께 어울린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순식간에 차기 수장으로서의 지지를 상실할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이렇게 만남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루피 자신뿐만이 아니라 자신을 지지해주는 주변 이들, 그리고 로우에게까지 악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그래서 루피는 조로의 충고를 듣기 전부터 몇 번이고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봤지만 뾰족한 수가 나오지도 않았으며, 로우와의 만남을 멈출 수도 없었다. 이미 루피는 주변의 상황과 자신의 입장보다도 로우와 만나는 것이 더 중요했다. 루피에게 있어서 로우는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였다. 무엇보다도, 루피는 도저히 로우를 혼자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로우는 가끔씩 루피 몰래 짓는 표정이 있었다. 서늘한 바람이 스치듯이 순간적으로 지나갈 때면 로우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 그곳을 잠시 바라보았다. 그리고 잔잔하게 피어오르는 눈빛과 입매는 굳이 루피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가 봐도 애처로우면서 그 누구보다도 외로워 보여 당장이라도 끌어안아주며 함께 있어주겠다고 맹세를 말할 정도의 각오를 끌어올려주는 모습이었다. 애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기에 미려하고 고고한 모습에 루피는 매료되고 말았다.
알고 싶었다. 왜 그가 이토록 보는 사람마저 가슴 에일 정도로 외로워하고 있는지. 당장이라도 홀로 앉아있는 저 나무 위에서 끌어내려 자신의 품에 안아들어 내가 옆에 있다고, 그러니까 그렇게 슬픈 표정 짓지 말라고 달래주고 싶었다. 그러나 로우는 나무 아래로 내려오지 않으며, 루피가 아무리 손을 뻗어도 로우에게 닿을 수가 없었다.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바로 눈앞에 선명히 보이는데도 그는 신기루처럼 손에 잡힐 듯 잡혀지지 않으며 야속하게도 그저 바라보게만 할 뿐이었다.
“로우, 잠시만 내려오면 안 돼?”
그래서 그런 야속함과 애달픔이 오늘로서야 입 밖으로 튀어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짐짓 애원하는 표정으로 자신에게 그렇게 부탁하는 루피의 말에 로우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어 루피를 내려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어버렸다.
“아니, 미안하지만 내려가지 않겠다.”
“어째서? 나를 못 믿는 거야?”
“그런 건 아니다. 다만….”
로우는 말을 채 끝맺지 못하고 루피를 내려다보았다. 앳된 얼굴 아래로 그가 걸치고 있는 붉은색 기모노가 눈에 들어왔다. 붉은색. 강렬하게 시야를 태워버릴 정도로 새겨지는 불의 색. 생명의 색. 그리고 피의 색. 이따금 나무 아래서 루피가 입고 있는 기모노를 내려다 볼 때면 그가 흐릿하게 떠올랐다. 이제 인간들의 기준에서 볼 때는 놀라울 정도로 시간이 흘러 잊을 때가 되었음에도 로우는 아직까지도 붉은색을 매개체로 그를 떠올리며 차마 잊지 못하고 있었다. 알고 있다. 이미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하고 체념하며 받아들였을 텐데도 가슴으로는 아직도 그의 색을 볼 때마다 온몸이 떨리며 심장은 곤두박질치듯이 뛰어올랐다.
그렇기에 여기서 내려갈 수 없는 것이다. 루피의 곁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그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처음 귀찮게 여겼던 것도 잠시, 자신을 만나는 것이 득보다는 실이 압도적으로 많을 텐데도 매일같이 자신이 있는 곳으로 찾아와 말동무가 되어주며 곁에 있어주었다. 그의 빈자리를 어떻게 해서든 채워 넣어 위로해주려는 것 같아서 로우는 몇 번이고 나무 아래로 내려가 그와 마주보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었다. 그러나 정말로 나무 아래서 내려가면, 자신은 스스로를 제어하는 것에 실패하여 그 붉은 기모노 자락을 붙들고 울며 잃어버린 단심(丹心)을 향해 울부짖을 것 같았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나 때문에 죽어버렸어. 보고 싶어. 꾹꾹 눌러 넣은 말들이 폭포수처럼 터져 나와 자신과 루피에게까지 동시에 상처를 줄 것 같아 로우는 두려운 마음에 나무에서 내려가지 못했다.
“…미안하다.”
끝내 이유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사과로 얼버무리듯이 정리해버린 로우는 차마 루피와 시선을 마주하지 못해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로우의 모습에 루피는 섭섭함보다도 미안함과 안타까움이 먼저 들었다. 자신이 무리한 부탁을 해서 그를 난처하게 만들어버린 것이 무엇보다도 신경 쓰였다.
“아냐, 괜찮아. 나는 괜찮아, 로우.”
그래서 루피는 그를 대신해서 웃어주었다. 웃지 못하는 그의 몫까지 루피는 웃어주며 자신보다도 로우를 먼저 위로해주었다. 괜찮다. 그 말대로 자신은 괜찮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로우가 내려오고 싶을 때 내려와 주면 돼.”
그렇게 말하며 루피는 다시금 자세를 다잡았다. 초조해하지 않아도 된다. 재촉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로우의 입장이 중요하니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로우는 언젠가 어떤 식으로는 대답해줄 것이며, 자신은 그것을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다. 언젠가 서로 나무 아래서 눈을 마주보며 이야기할 날이 올 것이다. 루피는 그러한 바람이 실현될 것으로 확신하며, 강하게 바라며 손을 뻗어 잡지 못하는 로우의 손을 대신해 그가 앉아있는 나무의 몸통을 만져보았다. 이렇게 해서라도 그와 이어지고 싶은 부스러기 같은 미련이 처량했다.
그 후로 두 사람은 말없이 같은 나무 아래서 마파람을 맞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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